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편안한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하지만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자신의 인생을 잘 풀어가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던 소설입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장편소설
책을 읽기 전에 본, 책 앞날개에 쓰여 있는 글입니다.
좋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 문장을 보고 어떤 내용의 소설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읽기 시작한 휴남동 서점. 사실 처음 몇 챕터를 읽으면서는 그냥 그랬어요. 동네 서점, 그 서점의 사장, 서점 직원, 그리고 서점 손님들의 모습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책 앞부분을 읽으며 이 책은 어떤 결말로 끝이 나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인물들의 상황이 드러나고 인물들 간의 관계가 조금씩 확장되면서 공감되기도 하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책 속의 휴남동 서점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동시에 저도 책 읽는 속도가 나면서 그 내용에 빠져들게 되었네요.
소설 속 인물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이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휴남동 서점 대표 영주, 서점 직원 바리스타 민준, 서점에 커피 원두를 납품하는 고트빈 사장 지미, 서점 손님 민철 엄마 희주, 고등학생 민철, 서점 손님 정서, 직장인이자 블로거이며 작가인 승우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데요. 인물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전혀 낯설지가 않아 보입니다. 모두가 우리들의 모습이며 나의 모습 같기도 하거든요.
일에 빠져 살다가 번아웃이 와서 퇴사, 그리고 이혼 후 서점을 연 사장, 명문대를 나왔지만 오랜 시간 취업이 되지 않자 취업은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고등학생, 그런 자녀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 엄마, 직장을 다니며 블로그를 운영하다 책까지 내게 된 작가, 계약직의 고통을 겪다 마음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된 인물 등 모두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입니다.
좋았던 문장
영주가 민철에게
숨통이 트이면 삶이 더 견딜 만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니까.
...
민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영주는 민철이 지금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감. 무료함. 공허감. 허무.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 마음의 상태지. 마른 우물에 빠져 웅크리고 앉아 있는 기분일 거야. 그 안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존재가 나인 것만 같고, 나만 힘든 것 같고, 그렇지."
...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 것 같아....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어. 저자들이 하나같이 다 우물에 빠져봤던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거든.... 내 고통은 지금 여기 그대로 있지만 어쩐지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아."
승우가 민철에게
"대충 아무 일이나 해봤는데 의외로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 우연히 해본 일인데 문득 그 일이 평생 하고 싶어 질지 누가 알아.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 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민준의 생각
민준은 이제 그만 흔들리기로 했다. 흔들릴 때 흔들리기 싫으면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꼭 붙잡으면 된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커피를 붙잡았다. 마음을 비우고 커피에 집중했다. 마음을 열고 커피에 집중했다.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 어디 내놓기에도 민망한 이런 평범한 생각이 민준에게 꽤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해 줬거든. 내가 말하지 않는데도 눈치챘다는 듯 괜히 호들갑 떨며 위로나 걱정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냥 받아들이는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애써 나를 부연 설명하거나 지금의 나를 거부하지 않게 됐던 것 같아. 나이가 드니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
...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
영주의 생각
서점에서 일을 하는 동안 전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책에서 배운 것들을 상상 속에서만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거든요. 저는 많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며 조금씩 더 나누고 베풀고자 했어요. 네, 전 나누고 베풀자고 굳게 다짐해야만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에요. 원래 태어난 바가 품이 크고 너그럽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 이곳에서 생활하며 저는 '앞으로도' 계속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거예요.
영주의 오늘 하루는 어제와 비슷할 것이다. 책에 둘러싸인 채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책에 관한 일을 할 것이며, 책에 관한 글을 쓸 것이다. 그러는 틈틈이 먹고, 생각하고, 수다도 떨고, 우울했다가 기뻐할 것이며, 책방을 닫을 즈음에는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며 대체로 기쁜 마음으로 서점 문을 나설 것이다.
...
영주는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인생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어딘가에서 읽은 문구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왠지 마음 따뜻해지는 장면 하나. 서점을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이렇게 관계를 맺어 가는구나 싶었던.
네 사람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승우와 민철이 마주 앉아 있었는데 정서가 합류했고, 마지막으로 민준이 커피를 들고 정서 맞은편에 앉았다. 승우는 첨삭, 정서는 코바늘 뜨기, 민준은 정서에게 커피 맛 평가 듣기, 민철은 정서의 코바늘 뜨기를 구경하면서 세 사람을 왔다 갔다 하며 말 걸기 중이었다.
정서는 승우에게 글을 첨삭해 주면 영주 언니에게 답례로 무얼 받는지 물었고, 민철은 민준에게 영주 이모는 저기서 저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민준은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고 했고, 승우는 민철에게 그때 쓴 글을 한번 보여줘 보라고 말했으며, 민준은 정서에게 방금 마신 커피에서 가장 두드러진 맛이 무엇이며 그 맛이 좋으냐 싫으냐 물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2022년 베스트셀러였고, 밀리의 서재 오디오 드라마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월부터 약 한 달간 뮤지컬로도 선보인다고 하는데요. 뮤지컬 속의 휴남동 서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네요.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인연 맺기,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가슴 따뜻해지는 말, 저에겐 많은 위로가 되었네요. 우리 동네에도 이런 서점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일에 정성을 다하기,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빛으로 고마움 전하기, 그리고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이길.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글이 전개될수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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