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 도서 리뷰

도서 리뷰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by hanara 2023. 9. 20.
반응형

 

이번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은 책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입니다.

저는 평소에 핸드폰 메모장에 관심 가는 책의 제목을 적어 놓는데요.

책을 읽다가 그 책 안에서 본 다른 책 제목이나, 작가나 번역가의 또 다른 책, TV나 인터넷을 하다 관심 가는 책을 보면 바로 메모장에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을 빌리죠. 

이 책은 메모해 놓은 지 좀 된 것 같은데 이번에 읽게 되었네요.

 

 

도서-인생의-마지막-순간에서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

샐리 티스데일 지음/박미경 옮김

 

 

작가 샐리 티스데일은 완화의료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완화의료'라는 단어가 좀 생소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완화의료란 질병의 개선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증상을 완화시켜, 보다 편안하게 삶을 유지하는데 목적을 둔 의료를 말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말기암 환자의 경우를 보면요. 암이 너무 많이 진행되어 더 이상의 적극적인 항암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완치나 생명 연장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인 불안과 상실감을 덜기 위해 마련된 의료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호스피스와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죽음이 가까운 환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치료를 하며 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적 도움을 주어 인간적인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인생의-마지막-순간에서-목차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목차

 
 

이  책은 죽음에 관한 고찰과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관한 책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죽음'을 겪을 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고 볼 수 있죠.

나이가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거나 어떠한 사고나 병으로 가까운 사람을 보내게 되면 그제야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일상생활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살면서 굳이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일이 곧 죽음이기도 합니다.

모두들 생각할 겁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죽음을 맞이해도 좋다고 생각될 때, 그런데 그런 때가 있긴 있을까요?) 큰 고통 없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요.

온갖 질병과 갖가지 사건사고가 많은 흉흉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나이 드는 일이 큰 복이라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나에게는, 우리 가족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하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일.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그 옆에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세상은 그대로인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기분은 무얼까...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때가 오면 난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받아들이게 될까, 아니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나 있을까, 갑작스러운 사고나 뭐 그런 끔찍한 일이 나에게 닥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할 수 없어 고귀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고 산다.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죽음을 나이에 결부시켜 말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규정하는 나이가 다 다르다. 과연 몇 살을 죽기 적당한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장수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불행한 상태로 오래 산 사람도 봤고 상당히 짧지만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산 사람도 알고 있다. 삶의 질은 삶의 기간에 달려 있지 않다. 직접 살아보기 전까진 뭐가 좋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좋은 죽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가 식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한 사람씩 호명하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흔치 않다. 만성 질환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사람도 발작이나 출혈 등으로 한순간에 숨이 넘어간다. 

 

가족이라는 거미집의 한가운데 죽음이 찾아들기 전까진, 가족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간병이 무엇을 뜻하는지, 상실감과 비통함 너머에 어떤 혼란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닥치기 전까진 어떤 크고 작은 일을 감당하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충격에 빠진다. 있지도 않은 잔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허공만 가른다.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두 발을 허우적거린다. 열쇠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열쇠가 없다.
'어, 뭐지?'
애통은 바로 '어, 뭐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내가 이걸 하면 넌 저걸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저렇게 대답했는데. 손을 뻗으면 늘 거기 있었는데. 이젠 손을 뻗은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진실이 거짓으로 변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길고 힘들어도,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와도 도무지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네요.

태어나고 죽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누군가를 잘 보내주는 것도, 내가 잘 떠날 수 있는 것도 참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오늘 하루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응형

댓글